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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 상하이 최대 한상 기업 ‘한영 E&C’ 대표 정한영 회장

긍정의 힘으로 항상 정도를 걷는 바른 기업가, 가화만사성을 실천한 바람직한 롤 모델


[SF 저널] 한국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중국 상하이 최대 한상기업인 '한영 E&C (Engineering & Construction)' 대표, 정 한영 회장을 산타클라라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인으로는 흔하지 않은 특이한 콧수염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는 산타클라라 지역에서 세 자녀를 낳고 오래도록 살았고, 당시 '코리아 포스트지'에 위트 있는 만화 만평을 게재해 지역 동포들의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중국 뿐 아니라, 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몽고등에 지사를 보유한 세계 적인 대규모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특이하게도 1977년 MBC 9기 탤런트 공채모집에서 만여 명 중 엄선된 4명 중 하나였고, 현재까지도 잘 알려진 배우인 길용우, 신신애, 권은아와 동기다. 지난 2010년 미스코리아 '진'인 정소라와 2012년 미스 서울 '미' 정유리의 아버지로 한 집안에 두 딸이 모두 미스코리아를 휩쓸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이 지역에 살던 때와 변함없이 젊잖은 모습으로 반듯하고 겸손한 품성으로 추억이 가득한 이 지역에 방문한 그를 만나 그간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변함 없이 꾸준한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정 한영 회장과 긴 시간 진솔한 대화를 하며 그가 믿을 만한 훌륭한 인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정한영회장은 1954년생으로 1977년 MBC TV 9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했다. 이후 도미해 각종 사업을 하다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 삼우 E&C 지사장을 지냈으며,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실리콘벨리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중국 상하이 한국상회(한국인회/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맡았으며 2009년 17대, 18대 회장을 역임했다. 미국에서 따뜻하고 여성스런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세 딸, 정 한아름(변호사), 정소라(미스코리아 '진'), 정유리(미스 서울 '미')가 있다.

정 회장은 오랜 세월 유지하고 있는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과 잘 생긴 외모덕분에 어느 자리에서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왔다. "4천대 1'의 경쟁을 뚫고 단번에 공채 탤런트시험에 합격하고 고속도로 인생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치열한 방송국에서 단역 조차 맡기 어려웠다.
정 회장은 평안해 보이는 외모로 여유로운 성장기를 보냈을 거라는 추측을 받는다. 그러나 5형제 중 막내인 그가 중 3때 아버지를 사별하고, 가세가 기울어 고등학교 진학을 제 때 못하고, 중학교 유도선생님의 도움으로 1년이 지난 뒤 서울 배명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유도와 합기도를 수련해 각각 2단을 보유하고 있다. 학비를 간신히 마련해 학교를 마치는 등 60년대 한국의 어려운 서민가정에서 빈곤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비록 MBC 공채로 합격했지만,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방송 출연도 못하고 매일 방송국만 오가는 정 회장을 보다 못한 형님이 미국 이민을 제안했고, 탤런트의 꿈을 털어내고 정 회장은 197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지만 영어가 안 되는 대부분의 한국 교포들이 걸었던 고단한 길을 정 회장 역시 걸었다. 그는 미국생활 초기는 사무실청소, 페인트 공, 플리마켓 물건판매, 토요다 자동차 세일즈맨, 구두수선 등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는 힘든 육체노동의 연속이었다. 당시 결혼해 딸 셋을 얻었고, 미국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가정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1986년 친형 정규수 회장이 운영하는 '삼우E&C'에서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반도체 클린룸을 건설하는 '삼우E&C'가 미국 지사를 만들자 지사장으로 역임하면서 사업을 익히기 시작했다.

1978년에 시작한 20여 년 간의 평범하고 고단한 미국 생활을 마치고, 2001년 여행가방 하나 들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삼우 E&C' 미국 지사장으로서 '삼우E&C 차이나' 법인을 정리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중국에서 청산절차를 밟는 도중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어 중국에서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2005년 설립된 코스닥 상장업체 '휴먼텍 코리아'의 중국법인 '휴먼텍 차이나' 지분을 100% 인수해 직접 전권을 갖고 경영하게 됐으며 건축물 인테리어를 하는 자본금 1,000만 위안규모 2급 건설업체도 합작 운영하게 되었다. '삼우E&C'는 중국사업을 총괄하면서 동남아시아로 발을 넓혔으며 2013년 '한영 E&C'로 상호를 변경했고, 현재 연간 매출 규모가 수백 억 원에 이르게 되었다.

정 회장은 50살 이르러 중국에서 급격히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중국과 미국의 비즈니스 풍토가 많이 다르지만 미국에서의 다양한 이민 생활의 경험은 현재의 '한영E&C'를 일군 튼튼한 밑거름이 되어 어떤 위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 자세로 사업을 운영하고 성장시킬 수 있었다.

정한영 회장 중국 진출초기 한국 대기업들이 중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좋은 기회를 얻었다. 삼성, LG, 하이닉스 등 한국 대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 위주로 수주를 많이 받게 되었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유일한 한국 클린룸 업체인 '한영 E&C(당시 '삼우E&C' 차이나)'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차츰 다양한 업종의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신도리코, 아모레, 콜마 등의 공사도 맡게 됐다.

반도체 크린룸용 판넬생산의 일류기업 '한영E&C'는 중국 상하이 교민들에게는 정한영 회장이 이끄는 기업으로 통한다. 중국에서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따라 많은 한국기업들이 겪었던 우여곡절을 한영E&C도 뼈저리게 경험하기도 했다.

중국 진출 초기에 가능성을 보고 중국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더 이상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첫 번째 큰 위기였다. 고생을 사서하는 구나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를 거쳐 2009년 하청업체의 과실로 공사현장이 무너지면서 중국사업을 접고 집까지 팔아야 하는 절명의 순간에 직면하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운영해온 회사가 큰 위기를 겪으면서, 사업뿐 아니라 가장 소중한 가정의 보금자리인 집까지도 정리할 마음을 먹으며 고뇌에 찼었던 그는 "모든 것을 버릴 때 비로소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당시를 회상하며 운 좋게 극복했다고 겸손히 말한다. 하지만 모든 위기들을 극복하고 성장가도를 걷는 것은 정 회장의 타고난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찾는 그의 '긍정'마인드가 통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무(無)' 에서 15년 만에 거대하게 일구어낸 중국사업 성공노하우를 '긍정'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한영 E&C'는 해외진출 또한 성공가도를 달린다. 현재 중국 내에는 공장 설계 건축에서 부터 관리까지 맡아주는 프로젝트들이 상하이뿐 아니라 쑤저우, 난징, 톈진, 옌타이, 광저우 등 곳곳에서 '한영E&C' 이름을 내걸고 진행 중이다. 또 중국과 한국 뿐 아니라, 2008년 베트남, 2010년 말레이시아에 이어 2013년 몽고까지 진출했다. 3개 국 모두 동종업계 최초의 기업으로 진출한 것이다.

2009년 위기극복 이후 2010년은 정 회장에게 명실 상부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해였다. 상하이 한인 상공회의소 협회 회장으로서 상하이 엑스포에서 한국 대통령을 접견하고 한인 상공인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과 업적을 남겼다. 또한, 둘째 딸 정소라 양이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됐으며, 2년 뒤 2012년엔 셋째 딸 정유리 양이 미스코리아 서울 '미'로 당선되는 기쁨을 안게 됐다. 둘째 딸 정소라는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하이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 후,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중국어와 영어, 일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재원으로 외교관이 꿈이다.

정 회장은 미스코리아 대회 당시 솔직히 소라가 '진'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한다. 어린 나이에 큰 자리에 오르면 혹시 자만해질까 염려한 탓이었다. 하지만 막상 본선에서 '진'으로 당선되니 무척 기뻤고 축하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당선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 한영 회장에게 꿈이 하나 생겼다. 베트남에서 20여 년간 기업을 운영한 LG화학 법인 장 출신이 재작년 베트남 한국대사로 임명됐다. 평소 친분이 있던 분이다. 외교관도 정치인도 아닌 기업인 출신이 한국대사가 되는 것에 큰 울림이 있었다. 어떤 직책에 대한 꿈이 아닌, 나이가 들어서도 중국에서 교민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중국에서의 오랜 경험과 인맥을 한국과 중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데 쓰겠다는 정한영 회장,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기업인이 모국을 위해 또 중국의 가까운 이웃들인 한인 교민들을 위해 사회에 공헌을 하고자 하는 그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이곳에서 20년간 우리와 함께 생활했던 정한영 회장을 지역 올드 타이머들은 잘 기억하고 있다. 신해선 대표가 발행했던 '코리아 포스트'에 위트 있고 의미 있는 만화 만평을 그려 주목 받았었고, 80년대 초 북가주 텔레비젼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 하기도 해 친근한 모습이다. 그는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신해선, 신예선 선생을 미국 거주 당시 형님과 누님으로 부르며 가깝게 지냈었는데, 오랜 세월 연락이 끊겨 서로 안부조차 모르고 살다 우연히 올해 연락이 한번 되었는데 한국 방문을 했던 신예선 선생과 일행을 상하이 그의 저택에 초청해 감동적으로 극진히 대접했다고 신예선 선생이 말해주었다. 한 번 맺은 옛 정과 우정을 상황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소중히 여기는 그의 진실한 면모에 한인의 끈끈하고도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다.

정 회장은 미술에 관심이 많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파리의 센 강변, 튈를리 궁의 한쪽에 오랑제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 이 있는데, 원래 오렌지를 키우는 온실 겸용의 건물로, 오래 전에는 이국적인 화초를 즐기는 귀족들의 사교 장이었다. 지금 이 건물 안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식물이 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타원형의 벽을 온전히 둘러싼 거대한 '수련' 연작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붓질밖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 앉아 바라보면 연못의 개구리 소리까지 들리는 마술의 연못 정원으로 불리는 유명 화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의 그림이다. 정 회장은 유화중에서도 전문가가 묘사하기도 굉장히 까다로운 바로 이 클로드 모네의 수련화를 직접 모사했는데 무심한 듯 정교한 유화의 붓이 만들어낸 걸작을 거의 전문 화가의 수준으로 잘 묘사했다.

정한영회장은 상하이 뜸사랑 협의회 회장도 역임하며, 구당 김남수 선생의 뜸 요법도 중국 전역에 보급하는 '배워서 나누어주자'는 봉사활동도 펼쳐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
며 화목을 일구고, 사업의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고, 사회에 지속적인 공헌을 심혈을 기울이는 국제적 시대의 모범적인 롤 모델 정한영 회장의 멈추지 않는 세계적 활약상을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 SFKorean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정한영 회장

  • 회사 직원들과 함께하는 정한영 회장

  • 두 딸과 함께 정한영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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