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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11 ]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이철수씨 추모식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중국계 갱단원 살해사건의 주범으로 누명을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아시안계 커뮤니티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된 이철수씨가 지난 2일 타계했다.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이철수씨 추모식
아시안계 인권운동가 등 다수 참석



62세의 나이에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이철수씨의 추모식이 9일 오전 산부르노 여래사에서 지인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철수씨의 억울한 사연을 최초로 보도해 구명운동의 불씨를 당겼던 새크라멘토 유니언 지의 전직기자 이경원씨가 86세의 고령에도 참석하여 고인의 삶을 회고하며 참석자들에게 생전의 생활을 소개했다. 그는 "이철수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도로 비참한 생애를 살다 갔다"며 "하지만 그동안 LA등지에서 아시안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강연활동을 해왔었다"고 밝혔다.

여래사의 회주스님인 설조스님은 "이철수는 분노와 원망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이제 평안한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지었다.

이날 추모식에는 일본계 변호사 제프 아다치, UC데이비스 리차드 김 교수 등 당시 이철수 구명운동에 참여했던 아시안계 인사들과, 잔 김, 김정학씨 등 평소 이씨와 친분이 있었던 한인사업가들이 조화도 보내고 참석하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철수씨의 사건은 당시 미주한인사회는 물론 본국에도 알려져 성원이 이어졌고, 미주내 아시안들이 연합하여 인종차별에 대항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었다.

하지만 구명운동으로 억울한 옥살이에서 자유의 몸이 됐던 이철수씨는 미국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찰서에 드나드는 신세로 전락했고 결혼의 실패, 화상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최근까지 비참한 삶을 살다가 지난 2일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SF Journal
박성보
  • 이철수씨 추모식

  • 이철수씨 추모식, 이경원 대기자

  • 이철수씨 추모식, 이경원 대기자

  • 이철수씨 추모식, 이경원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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