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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을 어떻게 다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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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20살이된 예비 새내기고, 전 어렸을때부터 존재라는주제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즈음엔 이별이랑 죽음을 무서워해서 밤마다 부모님을 붙잡고 죽지말라고, 나도 죽고싶지않다고 대성통곡을 했고, 물건 하나하나에 큰 의미부여를 해서 200x년 x월x일 몇 시에 무언가가 이 위치에서 이 모양대로 존재할수있는건 지금 밖에 없으니 모든걸 기억해두고 제게서 떠나가지않도록 노력하기도 했어요.
강박증이랑 비슷했지만 물건 수집욕이 있었던건 아니고 그냥 어떤 존재의 변화가 두려워서 모든게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었습니다.
4학년부터는 영재학급에 다니다 시 영재원에 다니다 대학부속 영재원에도 다니며 방과후랑 주말마다 과학에 푹 빠져살았고, 특히 물리랑 천체, 수학을 좋아해서 온갖 대회들이랑 행사들에 빠져살았습니다.
그래서 보통 또래보다 많은사람들이랑 만나고 헤어지며 공허함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이별과 만남에 뒀던 초점을 사람 본연의 존재 자체에 옮겨 이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됐습니다.
그러다 사람들 개인마다 다른 이성이 존재하고, 저는 평생 제 안에만 갇혀 남의 시각과 사고로는 세상을 바라볼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경의롭고 충격적이라, 사람과 생명이라는 존재가 너무 신기하게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공부를 즐겨하며 점점 지식이 늘어나 그 지식들을 제 현실세계에 대입해 생각하는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고, 세상의 존재에 대해 위화감과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주에 대해 공부를 하며 모든게 의미없다는 생각이들어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무언가가 존재하더라고 그 존재를 느끼고 사고할수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건 존재할수 있는건지, 우리들은 이미 존재를 잃을 미래가 확정되어있는데 무얼위해 살아가는지, 생명의 이유가 뭔지, 존재의 이유가 뭔지etc 광활하고 허무한 생각이 줄줄이 이어져 결국 무언가가 존재를 하는 목적 자체에 의문이 느껴지는 동시에 허탈해지더라구요.
아무리 뛰어난 위인이라도, 장엄한 자연물이라도, 아름다운 은하들이라도 모든게 끝이 정해져있고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못한채 존재성을 잃게될테니 모든게 의미없게 생각되었구요.
제 얄팍한 지식으로도 이런 사고까지 미치는데, 지식이 많아질수록 제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게될지 너무 두려웠습니다.
분명 지식의 확장에 따라 연쇄적인 의문들이 떼를 지을텐데, 저는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할테니까요.
또한, 시간은 뭐고 공간은 뭐고 뭐가 처음이고 시간과 공간 이전은 무엇이고 그 모든것은 어떻게 정의되는건지 제 주변의 모든것에 위화감이 들어 결국 더이상 알아가는게 두렵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어요.
지금으로선 우주의 근원도 너무 궁금하고, 시공간의 존재랑 원리도 너무 궁금하고 모든게 궁금하고 알아내고싶은 욕심이 크지만, 결국 제 욕심도 아무 의미가 없는것처럼 느껴져 더 이상 자연과학을 알아가고싶지않더라구요.
하루도 너무짧고 일생도 너무 짧고 어쨌든 제 세상을 이루는 본체는 제 육체에 국한되는것이니 제 죽음이전까지 이룰수있는것들이 거의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어요.
하고싶은게 너무나많은데 제 이성은 제가 성취를 이루기도전에 높은확률로 없어질테고, 만약 낮은확률로 성취를 이룬다하더라도 죽음을 맞이한뒤의 저는 그것들을 더이상 사고하지 못할테니 모든 끝은 불행이며 그 불행마저도 느낄수있는 주체가 소멸됨과 동시에 소멸될테고요.
몇년전 작은 사고를 당해 몇가지 검사를 하려고 대학병원에 입원했을때 기력이 다해보이는 할머니를 우연히 보게됐는데,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면서 울고계시더라구요.
그 광경을 목격하기 전까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때즈음엔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끝을 준비할수 있을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그 목격을 기점으로 저역시 죽음을 대비하지못하고 거스를수 없다는사실을 깨달아버렸고요.
결국 미국으로 유학가서 물리를 탐구해보고싶은 욕심은 내려두고 흘러가는대로 사람들이랑 살고싶어 의예과를 가게되었습니다.
한번 마음을 내려두니 머릿속이 차분해지더라구요.
하지만 여전이 모든게 끝으로 달려가고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우연한 지점이 현재이고, 이 모든게 너무나 경의롭지만 그건 달려가는 기차안에서의 작은 변화정도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해서 무기력해져요.
하루하루를 포기와 체념으로만 넘기고 있는데 이런 회의감을 벗어나려면 어떡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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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를 아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작성자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인간이란 찰나 있는 유기물 덩어리이며, 삶은 기회조차 아니죠.
선택할 수 없는 탄생을 맞이한 우리는 진화로 형성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의식하기 전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죠. 지능, 성격, 겉모습,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발달......
교통사고라도 크게 나면 아등바등 이어 온 시간과 생명에 부여된 무거운 가치가 우습게 모든 것은 끝납니다.

​아랍 문명이 남긴 거대 석상은 소량 폭약에 형체 없이 사라지고, 수백 년 이어져 온 성당은 불타 무너져 내립니다.
오세아니아 대륙이 잉태한 생명의 신비함이, 불 속에서 숲과 함께 우리가 모르는 새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번식욕에 이끌린 착각이고, 도덕은 필요에 의해 도입된 것이며 아무리 수학이 발달해도 어떤 공리는 증명할 수 없지요.

​의미의 껍질을 아주 벗겨내면 남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죠. 아무리 파헤쳐도 닿는 데가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사랑이 생긴 진화의 과정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미각과 포만감이 그저 살아가기 위한 자극이라도, 야심한 새벽 나가 먹은 국밥에 뜨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가 행복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행복감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존재가 가진 한계는, 실존을 바라볼 때 잊을 수 있습니다.

​실존은 순간에 있습니다. 무의미 속에서 순간은 이어집니다.

순간에 어떤 의미를 쌓느냐, 그것이 실존하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작성자님은 세상을 해석하고 있으며, 무의미마저 하나의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스스로도 아실 겁니다.

​즉 작성자님이 모든 의미를 지워낸 그 자리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이미 직접 지은 의미입니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꾸며진 의미라면 어떤 신기루를 어떻게 좇을 것인지.
be가 가짜라면 적어도 어떻게 ing할 것인지.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삶의 달리기는,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란, 달리게 하는 원동력일 수 있어도, 결국 잘 달리기 위한 마인드세팅에 불과하죠.

​그러니 차라리 춤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ing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산타클로스가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유년의 크리스마스는 참 두근댔습니다.
앞으로도, 산타의 상징에 설령 아무 실체 없더라도 모든 이의 크리스마스는 풍요롭겠죠.

​물리학에 뜻이 있었다 하셨죠.
만약 다시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원리나 배움 자체가 아닙니다.

​원리로 나아가는 과정, 그 지향 속에, 마땅히 찾고자 하는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신기루에 닿을 수 없을지라도 신기루를 사랑하는 길은 작성자님의 삶에 있기 바라며,
두 줄 요약 들어갑니다.

​1. 그런 것(X as it)은 없다.
2. 그러는 것(X being it)만이 있다.

​늘, 좋은 게 좋은 겁니다.
추천 8

작성일2024-12-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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