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예정 그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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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예지 예정에 관한 글을 올렸고 요번에 2편을 올려 대미를 장식하려 한다.
로마서 9장 9절 말씀부터 19절 말씀까지 보자.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
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
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 하시뇨 누가 그 뜻을 대적 하느뇨 하리니"
상기 성구들은 신약에서 이중 예정에 관한 성구들로 가장 의미 있는 성구들이다
18절 말씀을 보자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란 문구에서 이 말은 어떤 이는 긍휼을
얻고 어떤 이는 공의를 얻었다는 말로 귀착 된다 물론 이 결정은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의나 바람에서 생기는 게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바울이 들은 예를 보자 야곱과 에서의 예로 이중 예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설명은 칼빈보다 또 성 어거스틴 보다도 훨씬 전에 미리 하신 말씀으로 어거스틴
으로 부터 칼빈으로 이어지는 예지 예정에 관한 신학을 꽃피우는 금자탑이다.
야곱과 에서는 한 어머니 태에서 자란 쌍둥이로 한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한 사람은 받지 못했다. 즉 야곱은 사랑을 에서는 미움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때의 미움이란 말은 다윗이 말한 거룩한 미움을 말하는 것이지 XX가 민도님을
미워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미움이다 XX의 미움은 악랄한 미움이지만
하나님의 미움은 바로 공의를 말하는 것이다. 고쳐 말하면 아무도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는 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미움이란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는 말이다.
바울이 무엇을 위하여 로마서 9장을 기술했을까 하는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하나님은 왜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않았는지는 또 하나님께서 야곱 안에서
어떤 의로운 일을 예견하셔서 야곱에게 은총을 주시었냐는 우리가 곱씹어 볼 수도
있다. 만일 바울이 이 구절에서 예정에 관한 예지적 견해를 가르치기를 원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 기회를 그냥 넘기고 말았다.
사실은 바울이 말하는 견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구원을 결정을 인간의
의지에 두는 예정에 관한 견해들을 단념하고 포기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라고 선언을 하시고 비 개혁 주의자들의
견해에서는 원하는 자로 말미암는 다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 반하는
견해며 알미니우스 주의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본 절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두개의 수사적 질문을 던진다.
첫째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라는 질문과
두 번째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 하시뇨 누가 그
뜻을 대적 하느뇨 하리니라는 물음이다
바울의 질문 두개는 바울 스스로 로마서 9장 20절에서 24절에 답해 놓았다.
지금은 요기 까지 마지막으로 바로의 강퍅을 중점으로 한 번 더 살펴보고
예지 예정에 관한 글을 맺으려 한다.
로마서 9장 9절 말씀부터 19절 말씀까지 보자.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
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
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 하시뇨 누가 그 뜻을 대적 하느뇨 하리니"
상기 성구들은 신약에서 이중 예정에 관한 성구들로 가장 의미 있는 성구들이다
18절 말씀을 보자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란 문구에서 이 말은 어떤 이는 긍휼을
얻고 어떤 이는 공의를 얻었다는 말로 귀착 된다 물론 이 결정은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의나 바람에서 생기는 게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바울이 들은 예를 보자 야곱과 에서의 예로 이중 예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설명은 칼빈보다 또 성 어거스틴 보다도 훨씬 전에 미리 하신 말씀으로 어거스틴
으로 부터 칼빈으로 이어지는 예지 예정에 관한 신학을 꽃피우는 금자탑이다.
야곱과 에서는 한 어머니 태에서 자란 쌍둥이로 한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한 사람은 받지 못했다. 즉 야곱은 사랑을 에서는 미움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때의 미움이란 말은 다윗이 말한 거룩한 미움을 말하는 것이지 XX가 민도님을
미워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미움이다 XX의 미움은 악랄한 미움이지만
하나님의 미움은 바로 공의를 말하는 것이다. 고쳐 말하면 아무도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는 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미움이란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는 말이다.
바울이 무엇을 위하여 로마서 9장을 기술했을까 하는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하나님은 왜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않았는지는 또 하나님께서 야곱 안에서
어떤 의로운 일을 예견하셔서 야곱에게 은총을 주시었냐는 우리가 곱씹어 볼 수도
있다. 만일 바울이 이 구절에서 예정에 관한 예지적 견해를 가르치기를 원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 기회를 그냥 넘기고 말았다.
사실은 바울이 말하는 견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구원을 결정을 인간의
의지에 두는 예정에 관한 견해들을 단념하고 포기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라고 선언을 하시고 비 개혁 주의자들의
견해에서는 원하는 자로 말미암는 다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 반하는
견해며 알미니우스 주의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본 절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두개의 수사적 질문을 던진다.
첫째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라는 질문과
두 번째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 하시뇨 누가 그
뜻을 대적 하느뇨 하리니라는 물음이다
바울의 질문 두개는 바울 스스로 로마서 9장 20절에서 24절에 답해 놓았다.
지금은 요기 까지 마지막으로 바로의 강퍅을 중점으로 한 번 더 살펴보고
예지 예정에 관한 글을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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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21 22:53
산화비1님의 댓글
산화비1
우리말 속담에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 놓고 하라면
멈춘다는데 그 말씀이 정녕 땅에 떨어질 말씀이 아니다
강퍅한 적그리스도 이쑤스의 지랄발광이 곧 시작되리라
멈춘다는데 그 말씀이 정녕 땅에 떨어질 말씀이 아니다
강퍅한 적그리스도 이쑤스의 지랄발광이 곧 시작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