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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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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화: 남편의 두배

은지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3교대로 돌아가는 편의점의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은지네 부부의 편의점은 8시부터 16시까지는 은지의 남편 윤호가, 16시에서 24시까지는 은지가, 0시에서 8시까지는 알바생 재현이가 일을 하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은지는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재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허벅지 위로 손바닥을 문질러 땀을 닦았다. 검은 스타킹의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렇게 예뻐?”

 

오후 네시, 은지가 편의점에 출근했을 때 윤호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언제는 안 예뻤나?”

 

은지는 아무 일도 없는 척 콧방귀를 뀌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은지는 실제로 예뻤으니까.

 

하얗고 자그마한 얼굴에는 쌍꺼풀 없이 커다란 눈, 오똑한 코, 앙증맞은 입술이 종합선물 세트처럼 꽉 들어차있었다.

 

얼굴만 빼어난 건 또 아니었다. 몸매 역시 우월했다. 평균보다도 작은 키였지만 굴곡이 남달랐다. D컵 가슴에 잘록한 허리, 크면서도 한껏 업된 엉덩이까지. 모든 남자들이 탐을 낼만 했다.

 

남편인 윤호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 모습에 반해 결혼까지 한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윤호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댄 이유는 은지가 평소에는 그 장점들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지가 일하는 시간은 16시부터 24시. 술을 찾는 손님이나 이미 술에 취한 손님이 많은 시간이었다.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고자 은지는 언제나 꾸미지 않고 추레하게 다녔다. 커다란 가슴을 가리는 박시한 티셔츠나 어벙벙해보이는 테가 두꺼운 안경까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안경은 벗어버렸고, 하늘하늘한 하얀색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색 스커트. 속이 비치는 검은 스타킹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처럼 보였다.

 

“이따가 밤에 보자고.”

 

윤호는 입맛을 다시는 시늉을 하며 은지의 엉덩이를 톡 두드리고는 나가버렸다.

 

밤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은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은지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거의 한시가 다 되었고, 아침 여덟시부터 일을 해야하는 윤호는 진작에 잠들어있었다.

 

서로 직접적으로 불만을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자그마한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 틈으로 재현이가 들어온 것이다.

 

재현이가 처음 이력서를 들고 왔을 때부터 은지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재현이가 대단한 미남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키가 크기는 했지만 외모적 장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퉁퉁한 몸집에 필요 이상으로 진한 눈썹으로 살짝 야만적인 느낌을 주었고,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깔끔하지 않았다.

 

“밤에는 위험하니까 그런 사람이 있어야해!”

 

은지가 윤호에게 이런 말까지 해가며 재현이를 뽑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재현이를 전부터 눈여겨 봤기 때문이다. 재현이는 이 편의점의 단골이었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쉽게 기억되는 얼굴이었는데 여자를 자주 바꿔댔다. 여자의 어깨 위로 두툼한 팔을 툭 걸쳐놓고 콘돔을 세통씩 사갔다. 한통에는 세 개가 들어있으니 총 아홉 개였다. 보잘 것 없는 외모에도 여자들이 따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재현이가 여자와 사라지고나면 은지는 혼자 남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재현이가 커다란 자지를 휘두르며 여자들을 거칠게 따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은지의 몸은 한껏 달아올랐다.

 

상상은 알아서 덩치를 키워갔다. 편의점에 함께 찾아왔던 여자를 따먹던 재현이는 어느새 은지를 노리고 있었다. 은지는 안 된다고, 남편이 있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상상 속의 재현이는 막무가내였다. 은지는 언제나 함락 당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은지의 상상일 뿐이었다. 현실 속의 재현이는 은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살짝 피곤해보이는 얼굴로 들어와 심드렁하게 몇마디를 주고 받다 은지가 퇴근해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실제로 재현이와 섹스까지 하기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 일상에는 자그마한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오늘의 의상과 화장은 그걸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편의점의 문을 열고 재현이가 들어왔다. 은지는 자기 혼자 괜히 놀라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 모습이 누가 봐도 귀여워보였지만 재현이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형식적인 인수인계를 가볍게 한 후로는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도 않았다.

 

“저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은지는 평소에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용기내어 뱉었다.

 

재현이는 달라진 것을 찾기 위해 은지의 몸을 훑었다. 쉽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을 텐데도 오래, 그리고 끈적하게 훑었다. 시선을 숨기지도 않았다. 커다란 가슴을 음미라도 하는 것처럼 바라봤다.

 

“예쁘네요.”

 

글자 그대로만 본다면 달콤할 수도 있었지만 재현이의 말투는 건조했다. 예의상 해주는 대답, 딱 그 정도였으니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아줌마가 되어버린건가 싶어졌다. 서른셋. 아이는 없었지만 결혼을 한지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아직 한창인 재현이에게는 여자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현이가 전에 같이 편의점에 온 사람 중에는 은지의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그 사람보다 내가 못한 게 뭐지?’

 

은지는 조금 더 대담해지기로 했다.

 

“잠깐 짐 좀 같이 정리해 줄 수 있어요?”

 

알바생이 사장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재현이는 순순히 은지를 따라 창고로 들어왔다. 창고는 이미 잘 정리가 되어있어 더 손을 댈 게 없어보였다.

 

은지는 괜히 바닥에 놓인 짐을 들어올리려 했다.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내밀며 몸의 굴곡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사장이 짐을 들려고하면 알바생이 달려와 돕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재현이는 뒤에서 멀뚱히 은지가 하는 것을 지켜만 봤다.

 

은지는 그게 좋았다. 일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팔렸다는 뜻이니까.

 

“보고만 있을 거에요?”

 

기분이 전혀 상하지 않았으면서도 괜히 새침하게 얘기했다.

 

“해야할 게 많나요?”

 

등 뒤로 들려오는 재현이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은지는 그대로 고개만 돌려 재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성적인 긴장감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많아요!”

 

은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크게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걸 원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쓸만하다고 믿었던 몸이 부끄러웠다.

 

“할 거 많으면 문 좀 닫고 올게요.”

 

재현이는 무심히 창고를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것까지 다 확인을 하고 나서 은지는 자그마하게 중얼거렸다.

 

“저 새끼 뭐야? 고자 아니야?”

 

출입문이 딸깍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자그마한 뭔가를 집어드는 소리도. 그리고 재현이가 다시 나타났을 때, 은지는 자신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재현이는 고자가 아니었다. 재현이의 손에는 콘돔이 들려있었다. 그것도 세통씩이나.

 

“지...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은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으나 재현이는 여전히 평온해보였다.

 

“섹스하고 싶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큰소리로 부정을 했지만 은지는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알지 못했다. 왜 재현이를 채용했는지, 왜 이런 옷을 입었는지, 왜 창고로 불러냈는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난 있잖아요, 딱 보면 알아요.”

 

재현이는 은지의 변화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전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성적인 긴장감을 내보이지 않았던 건 체급의 차이가 너무 났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토끼를 앞에 두고 긴장하는 일은 없는 것처럼.

 

“아니, 아니라니까요.”

 

은지는 고개를 저었다. 은지의 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재현이는 뚜벅뚜벅 걸어오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어던지자 넓은 가슴이 드러났다. 은지는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결혼을 하고 난 후로는 오로지 남편 윤호의 몸만을 봤을 뿐이다. 은지와 일곱 살 차이가 나는 윤호는 어느새 마흔이었다. 완벽하게 망가진 아저씨의 몸매는 또 아니었지만, 그래도 40대의 몸이었다. 지금 은지의 눈 앞에 있는 20대의 몸과는 달랐다.

 

가슴이 뛰었다. 어느 여자든 마음대로 따먹고 다닐 것만 같은 이 남자가 자신을 여자로 보고 다가온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은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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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1-2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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