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연방대법관 진보 진영의 암사자 liberal lioness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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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관 진보 진영의 암사자 liberal lioness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연방대법관; Associate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Ruth Bader Ginsburg
큰 별이 졌습니다.
진보 진영의 암사자 liberal lioness 로 불리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연방대법관이 9월 18일 87세로 별세했죠.
9명의 현직 대법관중 최고령이었던 그녀는
1993년 임명된 이래 4차례나 암과 싸워왔습니다.
지난해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지난 1월 “다 나았다”고 했던 그녀는
2020 7월 합병증으로 다시 입원했고, 두 달 만에 안타깝게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가 임종 전 손녀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내 가장 간절한 소망(fervent wish)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내 후임이 임명되지 않는 거란다.”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과 달리 임종 발표 소식이 전해진지 1시간여 만에 대법원은 정치적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애도나 배려라는 단어를 모르는 정치인들)
대선을 불과 한달여 남겨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인데요.
만약 보수 성향의 인물이 지명되면 보수 5명, 진보 4명이던 대법원의 정치적 균형이 보수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녀의 삶과 정치적 파장, 앞으로의 대선 정국까지 쉽고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긴스버그 어떤 분이야?
1933년 3월15일 뉴욕 출생입니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아버지 네이선 베이더와 뉴욕 출생의 역시 유대인인 어머니 셀리아 앰스터 사이에서 태어났죠.
외삼촌을 대학에 보내느라, 고교만 마쳐야 했던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당당하고 지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셨죠. 이름부터가 그렇습니다. 긴스버그의 출생명은 조앤 루스 베이더인데요. 어머니는 초등학생이던 딸의 학급에 같은 이름의 동급생이 많은 걸 알고 선생님께 ‘루스’라고 불러달라고 했답니다.
딸이 여러 명의 조앤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이 편치 않았던 거겠죠.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녀는 차별받는 여성이 아닌 하나뿐인 ‘루스’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17세에 코넬대 정치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후엔 하버드 법대 총원 500명 중 9명에 불과한 여성으로 입학합니다.
당시 학과장이 초대한 식사자리에서 “왜 하버드 법대에 와서 남자의 자리를 차지하냐?”라는 불쾌한 질문을 받았죠.
당시 루스는 “남편이 하버드 법대에 다니고 있어 그를 이해하려고 입학했죠”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소심한 답변이 두고두고 후회됐던 그녀는 이듬해 남편이 뉴욕에 취직이 되자 컬럼비아 법대로 편입합니다. 결과요? 수석으로 졸업했죠. (하버드가 놓친 세기의 인재)
졸업 후엔 어땠어?
법조계에 나와서도 그녀는 차별과 맞서야 했습니다.
컬럼비아 법대를 수석으로 나오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대신 교수직을 택해야 했죠.
좌절하지 않고 강단에 섰던 그녀는
교수시절 성을 뜻하는 용어로 생물학적 의미가 강한 ‘섹스(sex)’ 대신
사회적 성의 가치가 녹아든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여성권익프로젝트(Women‘s Rights Project)을 공동창립한 그녀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관련 사건을 도맡으며 스타 인권변호사로 떠올랐죠.
1980년부터 1993년까지 항소법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지명됩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은 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이죠.
대표적 판례를 소개해줘
그녀는 법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억압하는 모든 형식의 권력에 맞서 “반대한다”고 외쳐왔습니다.
1996년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버지니아 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에 여학생 입학을 허가하도록 판결했고,
1999년에는 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서 분리하여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결했습니다.
2007년엔 남녀임금격차에 반대하여 승소한 것을 대법원이 뒤집자 강력한 반대의견을 표명했죠.
2015년에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2016년 낙태 시술을 제한하는 텍사스주의 법안을 폐지하는 판결에도 일조했습니다.
특히 낙태에 대해선 “여성이 자신을 위해서 결정할 문제이다. 그 결정을 정부가 대신한다면 이는 여성을 스스로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했죠.
그의 강렬하고 진보적인 소수의견(dissents)은 젊은층에서 조차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망한 유명 래퍼 노토리어스 B.I.G.에서 따온 ‘노토리어스 R.B.G.(Ruth Bader Ginsberg의 약자)’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남편이 대단한 분일거 같아.
맞습니다. 코넬대 입학한 17세에 남편 마틴 긴스버그(2010년 사망)를 만나 졸업 직후 결혼합니다. 남편 역시 뛰어난 변호사였지만 육아와 가사를 서로 분담하며 외조에 힘썼다고 합니다.
긴스버그는 후에 남편과의 만남을 회고하면서 “여성인 내게도 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인정해준 남자”라고 했답니다. (남편들 좀 받아적자)
두 자녀를 뒀는데 딸 제인은 현재 컬럼비아 법학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고
아들 제임스는 클래식음악 음반회사인 세딜 레코드의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대법관이 사망했는데 왜 정치권이 시끄러운 거야?
말씀드렸듯 대법원의 역할과 그녀의 위치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헌법 및 하위 법률에 대해 최종판단을 하는 최고의 사법기관입니다.
대법관은 스스로 사임,은퇴하거나 범죄 행위로 인해 탄핵받지 않는 한 헌법에 의해 종신까지 임기를 보장받습니다.
9명의 판결에 따라 미국은 물론 국제 정세가 급변할 수 있어 보수와 진보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죠.
2000년 대선의 예를 들어볼까요. 당시 플로리다 주에 대한 재검표 여부를 두고 부시와 고어 후보 간 공방이 이어졌었죠. 결국 이 논란은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진보 성향의 대법관 4명은 재검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반면 보수 성향의 대법관 4명은 재검표가 불필요하다고 봤어요. 이때 보수 성향의 케네디 대법관이 재검표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부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죠.
동성 결혼 역시 케네디 대법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합법화됐습니다. 그녀가 사망하면서 현재 진보 성향의 대법관은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3명만 남게 된 상황입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죠.
그렇다해도 애도의 기간은 거쳐야 하지 않나?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기가 정치적으로 아주 미묘합니다. 역대 어느 대법관도 대선을 이렇게 가까이 두고 지명된 적이 없죠. 긴스버그 대법관의 별세가 발표된 건 2020 9월18일 오후 7시28분인데요, 불과 1시간 30분 뒤에 미치 매코널(공화당) 상원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자는 상원의 인준을 얻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지명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죠. 이에 민주당은 즉시 “위선적인 행위”라면서 펄펄 뛰고 있어요.
왜 위선적이라고 하는 건데?
2016년 매코널 상원대표가 한 행동 때문입니다. 당시 안토닌 스칼라 대법관 사망으로 빈자리를 채워야 했는데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후임으로 메릭 갈랜드를 지명했지만 당시 상원을 장학한 공화당의 반대로 청문회 조차 열리지 못했어요. 대선을 10개월 앞둔 상황이라는 이유로 다음 정권에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결국 그 공석은 공화당의 뜻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해 지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이 채웠습니다. 매코널 대표 말대로라면 대선을 10개월 남겨둔 2016년엔 지명하면 안 되고 대선을 한달 앞둔 2020년엔 된다는 논리인데요. 민주당 입장에선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 있죠.
공화당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매코널 상원대표는 4년 전과 달리 지금은 대통령과 상원 집권당이 같은 당이기 때문에 후임을 지명하고 인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더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주장입니다. 아시다시피 정치는 논리나 일관성보다는 힘의 원칙이 지배합니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매코널 대표 입장에서는 더더욱 인준을 강행시켜야 합니다. 본인이 상원에서 얻은 입지는 대부분 보수 성향의 법관 임명으로 얻은 것이니까요. 그가 지금까지 관철시킨 보수 인사 판사는 항소법원 등을 포함해 200명이 넘습니다. 매코넬의 뚝심을 익히 아는 민주당은 ‘소도 웃을 소리(laughable)’라면서 인준을 끝까지 막겠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후임 지명은 대통령 취임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뭐래?
당연히 곧 후보자를 발표하겠다고 했고 대선 이전 인준 강행을 시사했습니다. 이번 주말, 그러니까 25일 혹은 26일엔 후보자를 발표하겠다고 합니다. 여성으로 뽑겠다고도 했죠. 1순위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제 7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던 에이미 코니 배럿이 꼽히고 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죠. 낙태 반대론자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향이 긴스버그 대법관과 정반대죠.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잖아. 대통령이 지명하면 인준 강행할 수 있지 않나?
맞습니다. 그런데 대선 전까지 인준을 마치려면 정신없이 내달려야 합니다. 대법관 취임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습니다. 다만 역대 대법관을 보면 지명부터 인준까지 평균 70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오늘(22일)부터 대선까지는 42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좀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인준 과정을 설명해줘.
말씀드렸든 후보는 대통령이 지명합니다.
그후 상원 법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통과하면 상원 전체 회의에서 최종 투표를 하죠.
통상 이 투표까지 상당이 긴 시일이 필요합니다.
전통적으로 상원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후보자와 만나 검증하려 하죠.
이 과정이 수주가 걸립니다.
인준에 필요한 표는 몇 표야?
원래는 60표였습니다만 지난 2017년 매코넬 상원대표가 이를 51표로 바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명한 대법관인 닐 고서치 후보 인준을 강행시키기 위한 꼼수였죠.
현재 상원의원 100명중 53명이 공화당 소속입니다. 그러니 이론대로라면 53-47로 후임 인준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변수가 나왔습니다.
공화당 소속 의원 3명이 대선 전 임명에 반대하고 나선 상황입니다.
인준 표결이 50-50으로 무산될 가능성이 생긴거죠.
누군데?
수전 콜린스(메인주),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미트 롬니(유타) 의원들이에요.
콜린스 의원은 “공정성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던 새 대통령이 당선되던 후보 지명은 11월3일 당선되는 대통령이 해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선 더 많은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고들 예상합니다.
같은 공화당인데 왜 인준에 반대해?
공화당내 찬반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선거가 코앞이기 때문입니다.
11월3일 선거에서 공화당 의석 38석이 걸려있는데요 이중 25석이 재선 도전입니다.
매코넬 대표 역시 재선 출마자중 한명입니다. 대부분이 빨리 휴회하고 선거구로 내려가 선거활동에 전념하길 원하죠. 이번 인준에 대한 본인의 선택에 따라 표심이 좌우될 수 있죠.
그래서 보수 성향의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은 인준을 후딱 해치우자는 입장이고 유권자 성향이 팽팽하거나 진보쪽인 지역구 의원들은 인준에 오판을 했다가 표를 잃는 후폭풍이 두려울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선거 이후로 인준 표결을 미루고 싶어하는 겁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선거 후 결과와 상관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자를 인준할까?
당연하죠. 아시다시피 공화당은 끝까지 보수 인사 인준을 관철시키려 할겁니다. 아마도 선거 후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1월3일 이후부터 대통령 취임일인 1월20일 사이 ‘레임덕 회기’내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선에도 영향이 있겠지?
물론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바이든 후보 양쪽 모두에게 긴스버그 대법관 별세 소식이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죠. 우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코로나19 대응 부실, 거짓말 등등의 비난 정국에서 프레임을 대법원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보수 유권자들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성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의 보수화를 앞세워 유권자들에게 ‘아, 이번 선거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구나’로 방향을 각인시킬 수 있죠. 바이든 후보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스버그 대법관을 앞세워 그를 존경하던 젊은 진보 성향의 여성들의 표를 차지할 수 있죠. 특히 DACA나 오바마케어 같은 긴스버그 대법관의 생전에 대법관내 균형이 만든 판결을 설명하면서요.
결론: 긴스버그는 숨을 거두고 나서도 미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치적 셈법이나 대법관의 저울추도 중요하지만 그녀가 걸어온 역사적 족적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녀가 남긴 말로 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할 결론을 대신합니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 뿐입니다.
(I ask no favor for my sex. All I ask of our brethren is that they take their feet off our necks)”
-2018년 다큐멘터리 RBG중
“연방대법관 중 몇명이 여성이라면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 대답은 늘 같습니다. ‘9명’입니다.”
- 2015년 조지타운대 강연에서 -
연방대법관; Associate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Ruth Bader Ginsburg
큰 별이 졌습니다.
진보 진영의 암사자 liberal lioness 로 불리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연방대법관이 9월 18일 87세로 별세했죠.
9명의 현직 대법관중 최고령이었던 그녀는
1993년 임명된 이래 4차례나 암과 싸워왔습니다.
지난해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지난 1월 “다 나았다”고 했던 그녀는
2020 7월 합병증으로 다시 입원했고, 두 달 만에 안타깝게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가 임종 전 손녀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내 가장 간절한 소망(fervent wish)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내 후임이 임명되지 않는 거란다.”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과 달리 임종 발표 소식이 전해진지 1시간여 만에 대법원은 정치적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애도나 배려라는 단어를 모르는 정치인들)
대선을 불과 한달여 남겨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인데요.
만약 보수 성향의 인물이 지명되면 보수 5명, 진보 4명이던 대법원의 정치적 균형이 보수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녀의 삶과 정치적 파장, 앞으로의 대선 정국까지 쉽고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긴스버그 어떤 분이야?
1933년 3월15일 뉴욕 출생입니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아버지 네이선 베이더와 뉴욕 출생의 역시 유대인인 어머니 셀리아 앰스터 사이에서 태어났죠.
외삼촌을 대학에 보내느라, 고교만 마쳐야 했던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당당하고 지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셨죠. 이름부터가 그렇습니다. 긴스버그의 출생명은 조앤 루스 베이더인데요. 어머니는 초등학생이던 딸의 학급에 같은 이름의 동급생이 많은 걸 알고 선생님께 ‘루스’라고 불러달라고 했답니다.
딸이 여러 명의 조앤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이 편치 않았던 거겠죠.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녀는 차별받는 여성이 아닌 하나뿐인 ‘루스’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17세에 코넬대 정치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후엔 하버드 법대 총원 500명 중 9명에 불과한 여성으로 입학합니다.
당시 학과장이 초대한 식사자리에서 “왜 하버드 법대에 와서 남자의 자리를 차지하냐?”라는 불쾌한 질문을 받았죠.
당시 루스는 “남편이 하버드 법대에 다니고 있어 그를 이해하려고 입학했죠”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소심한 답변이 두고두고 후회됐던 그녀는 이듬해 남편이 뉴욕에 취직이 되자 컬럼비아 법대로 편입합니다. 결과요? 수석으로 졸업했죠. (하버드가 놓친 세기의 인재)
졸업 후엔 어땠어?
법조계에 나와서도 그녀는 차별과 맞서야 했습니다.
컬럼비아 법대를 수석으로 나오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대신 교수직을 택해야 했죠.
좌절하지 않고 강단에 섰던 그녀는
교수시절 성을 뜻하는 용어로 생물학적 의미가 강한 ‘섹스(sex)’ 대신
사회적 성의 가치가 녹아든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여성권익프로젝트(Women‘s Rights Project)을 공동창립한 그녀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관련 사건을 도맡으며 스타 인권변호사로 떠올랐죠.
1980년부터 1993년까지 항소법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지명됩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은 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이죠.
대표적 판례를 소개해줘
그녀는 법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억압하는 모든 형식의 권력에 맞서 “반대한다”고 외쳐왔습니다.
1996년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버지니아 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에 여학생 입학을 허가하도록 판결했고,
1999년에는 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서 분리하여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결했습니다.
2007년엔 남녀임금격차에 반대하여 승소한 것을 대법원이 뒤집자 강력한 반대의견을 표명했죠.
2015년에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2016년 낙태 시술을 제한하는 텍사스주의 법안을 폐지하는 판결에도 일조했습니다.
특히 낙태에 대해선 “여성이 자신을 위해서 결정할 문제이다. 그 결정을 정부가 대신한다면 이는 여성을 스스로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했죠.
그의 강렬하고 진보적인 소수의견(dissents)은 젊은층에서 조차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망한 유명 래퍼 노토리어스 B.I.G.에서 따온 ‘노토리어스 R.B.G.(Ruth Bader Ginsberg의 약자)’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남편이 대단한 분일거 같아.
맞습니다. 코넬대 입학한 17세에 남편 마틴 긴스버그(2010년 사망)를 만나 졸업 직후 결혼합니다. 남편 역시 뛰어난 변호사였지만 육아와 가사를 서로 분담하며 외조에 힘썼다고 합니다.
긴스버그는 후에 남편과의 만남을 회고하면서 “여성인 내게도 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인정해준 남자”라고 했답니다. (남편들 좀 받아적자)
두 자녀를 뒀는데 딸 제인은 현재 컬럼비아 법학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고
아들 제임스는 클래식음악 음반회사인 세딜 레코드의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대법관이 사망했는데 왜 정치권이 시끄러운 거야?
말씀드렸듯 대법원의 역할과 그녀의 위치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헌법 및 하위 법률에 대해 최종판단을 하는 최고의 사법기관입니다.
대법관은 스스로 사임,은퇴하거나 범죄 행위로 인해 탄핵받지 않는 한 헌법에 의해 종신까지 임기를 보장받습니다.
9명의 판결에 따라 미국은 물론 국제 정세가 급변할 수 있어 보수와 진보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죠.
2000년 대선의 예를 들어볼까요. 당시 플로리다 주에 대한 재검표 여부를 두고 부시와 고어 후보 간 공방이 이어졌었죠. 결국 이 논란은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진보 성향의 대법관 4명은 재검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반면 보수 성향의 대법관 4명은 재검표가 불필요하다고 봤어요. 이때 보수 성향의 케네디 대법관이 재검표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부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죠.
동성 결혼 역시 케네디 대법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합법화됐습니다. 그녀가 사망하면서 현재 진보 성향의 대법관은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3명만 남게 된 상황입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죠.
그렇다해도 애도의 기간은 거쳐야 하지 않나?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기가 정치적으로 아주 미묘합니다. 역대 어느 대법관도 대선을 이렇게 가까이 두고 지명된 적이 없죠. 긴스버그 대법관의 별세가 발표된 건 2020 9월18일 오후 7시28분인데요, 불과 1시간 30분 뒤에 미치 매코널(공화당) 상원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자는 상원의 인준을 얻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지명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죠. 이에 민주당은 즉시 “위선적인 행위”라면서 펄펄 뛰고 있어요.
왜 위선적이라고 하는 건데?
2016년 매코널 상원대표가 한 행동 때문입니다. 당시 안토닌 스칼라 대법관 사망으로 빈자리를 채워야 했는데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후임으로 메릭 갈랜드를 지명했지만 당시 상원을 장학한 공화당의 반대로 청문회 조차 열리지 못했어요. 대선을 10개월 앞둔 상황이라는 이유로 다음 정권에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결국 그 공석은 공화당의 뜻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해 지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이 채웠습니다. 매코널 대표 말대로라면 대선을 10개월 남겨둔 2016년엔 지명하면 안 되고 대선을 한달 앞둔 2020년엔 된다는 논리인데요. 민주당 입장에선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 있죠.
공화당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매코널 상원대표는 4년 전과 달리 지금은 대통령과 상원 집권당이 같은 당이기 때문에 후임을 지명하고 인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더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주장입니다. 아시다시피 정치는 논리나 일관성보다는 힘의 원칙이 지배합니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매코널 대표 입장에서는 더더욱 인준을 강행시켜야 합니다. 본인이 상원에서 얻은 입지는 대부분 보수 성향의 법관 임명으로 얻은 것이니까요. 그가 지금까지 관철시킨 보수 인사 판사는 항소법원 등을 포함해 200명이 넘습니다. 매코넬의 뚝심을 익히 아는 민주당은 ‘소도 웃을 소리(laughable)’라면서 인준을 끝까지 막겠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후임 지명은 대통령 취임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뭐래?
당연히 곧 후보자를 발표하겠다고 했고 대선 이전 인준 강행을 시사했습니다. 이번 주말, 그러니까 25일 혹은 26일엔 후보자를 발표하겠다고 합니다. 여성으로 뽑겠다고도 했죠. 1순위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제 7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던 에이미 코니 배럿이 꼽히고 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죠. 낙태 반대론자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향이 긴스버그 대법관과 정반대죠.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잖아. 대통령이 지명하면 인준 강행할 수 있지 않나?
맞습니다. 그런데 대선 전까지 인준을 마치려면 정신없이 내달려야 합니다. 대법관 취임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습니다. 다만 역대 대법관을 보면 지명부터 인준까지 평균 70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오늘(22일)부터 대선까지는 42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좀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인준 과정을 설명해줘.
말씀드렸든 후보는 대통령이 지명합니다.
그후 상원 법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통과하면 상원 전체 회의에서 최종 투표를 하죠.
통상 이 투표까지 상당이 긴 시일이 필요합니다.
전통적으로 상원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후보자와 만나 검증하려 하죠.
이 과정이 수주가 걸립니다.
인준에 필요한 표는 몇 표야?
원래는 60표였습니다만 지난 2017년 매코넬 상원대표가 이를 51표로 바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명한 대법관인 닐 고서치 후보 인준을 강행시키기 위한 꼼수였죠.
현재 상원의원 100명중 53명이 공화당 소속입니다. 그러니 이론대로라면 53-47로 후임 인준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변수가 나왔습니다.
공화당 소속 의원 3명이 대선 전 임명에 반대하고 나선 상황입니다.
인준 표결이 50-50으로 무산될 가능성이 생긴거죠.
누군데?
수전 콜린스(메인주),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미트 롬니(유타) 의원들이에요.
콜린스 의원은 “공정성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던 새 대통령이 당선되던 후보 지명은 11월3일 당선되는 대통령이 해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선 더 많은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고들 예상합니다.
같은 공화당인데 왜 인준에 반대해?
공화당내 찬반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선거가 코앞이기 때문입니다.
11월3일 선거에서 공화당 의석 38석이 걸려있는데요 이중 25석이 재선 도전입니다.
매코넬 대표 역시 재선 출마자중 한명입니다. 대부분이 빨리 휴회하고 선거구로 내려가 선거활동에 전념하길 원하죠. 이번 인준에 대한 본인의 선택에 따라 표심이 좌우될 수 있죠.
그래서 보수 성향의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은 인준을 후딱 해치우자는 입장이고 유권자 성향이 팽팽하거나 진보쪽인 지역구 의원들은 인준에 오판을 했다가 표를 잃는 후폭풍이 두려울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선거 이후로 인준 표결을 미루고 싶어하는 겁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선거 후 결과와 상관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자를 인준할까?
당연하죠. 아시다시피 공화당은 끝까지 보수 인사 인준을 관철시키려 할겁니다. 아마도 선거 후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1월3일 이후부터 대통령 취임일인 1월20일 사이 ‘레임덕 회기’내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선에도 영향이 있겠지?
물론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바이든 후보 양쪽 모두에게 긴스버그 대법관 별세 소식이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죠. 우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코로나19 대응 부실, 거짓말 등등의 비난 정국에서 프레임을 대법원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보수 유권자들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성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의 보수화를 앞세워 유권자들에게 ‘아, 이번 선거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구나’로 방향을 각인시킬 수 있죠. 바이든 후보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스버그 대법관을 앞세워 그를 존경하던 젊은 진보 성향의 여성들의 표를 차지할 수 있죠. 특히 DACA나 오바마케어 같은 긴스버그 대법관의 생전에 대법관내 균형이 만든 판결을 설명하면서요.
결론: 긴스버그는 숨을 거두고 나서도 미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치적 셈법이나 대법관의 저울추도 중요하지만 그녀가 걸어온 역사적 족적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녀가 남긴 말로 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할 결론을 대신합니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 뿐입니다.
(I ask no favor for my sex. All I ask of our brethren is that they take their feet off our necks)”
-2018년 다큐멘터리 RBG중
“연방대법관 중 몇명이 여성이라면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 대답은 늘 같습니다. ‘9명’입니다.”
- 2015년 조지타운대 강연에서 -
작성일2020-10-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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